"이상 징후 알고도 현장 진입"… 서소문 고가 참사가 남긴 해체공사 잔혹사

- 59년 노후 고가, 마지막 철거 구간 남겨두고 ‘와르르’

- 토목 해체 감리 공백·공기 압박이 부른 인재(人災)… 스마트 안전망 전환 서둘러야

- 전방위 수사와 '토목 해체 감리제' 도입 급물살

[에콜로지코리아=이거룩 기자] 지난 26일 오후 2시 33분경, 서울 도심 한복판인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상판 슬라브와 거더가 붕괴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공정률 80%를 넘기며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던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현장을 점검하던 시공사 현장소장, 감리단장, 구조기술사 등 3명이 잔해에 매몰돼 숨졌다.

 

이번 사고는 단순한 '운 나쁜 사고'가 아니다.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도 전문가들을 무방비로 위험 현장에 투입한 구조적 안전불감증과 법적 사각지대가 결합해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공사 공사구간 지도 (출처: 내 손안에 서울)

 

사고의 서막은 당일 새벽에 시작됐다. 26일 새벽 1시 30분경 상판 절단 작업 중 슬라브가 2.9cm가량 내려앉는 이상 단차가 발생했고, 이에 따라 새벽 2시 30분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문제는 그 이후의 대처였다. 구조물이 이미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경고 신호가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2시경 합동점검단 일행은 별도의 지지대(잭서포트)나 크레인 등 안전 보양 조치 없이 상판 구조물 내부로 직접 진입했다. 진단 작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버티던 거더(대들보)가 끊어지며 상반 전체가 붕괴했다.

 

게다가 사고 직전까지 고가차도 아래로 KTX와 무궁화호 등 열차가 통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하부 철로 통제 요청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총체적 관리 부실의 민낯이 드러났다.

 

철근 노출, 콘크리트 탈락이 발생한 서소문 고가차도 모습 (출처: 내 손안에 서울)

 

국토교통부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체 및 철거공사 중 발생한 건설사고는 매년 200건을 웃돌며 꾸준히 증가해왔다. 2021년 194건이던 사고는 지난해 248건에 달했고, 연평균 사망자 수만 20명이 넘는다.

 

학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해체공사 재해 유형의 대부분은 추락(38%)과 붕괴(31%)다. 원인으로는 작업계획서 부재(27%)와 구조 안정성 검토 부족(24%)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노후 구조물 철거의 경우 신축 공사보다 역학적 변수가 훨씬 많음에도 현장의 안전 인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이번 사고처럼 하루 3시간 남짓한 경의선 철로 상부 작업 시간 제약과 "공기(공사기간)를 맞춰야 한다"는 압박이 무리한 공정을 자초했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이번 사고의 여파로 향후 해체·철거 공사 안전 기준과 건설 업계 전반에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찰은 광역범죄수사대에 전 전담 수사팀을 꾸려 서울시와 시공사 등 7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산재수습본부를 구성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전제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 중이다. 시공사뿐만 아니라 발주처인 서울시 역시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건축물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일반 건축물과 달리, 교량·고가차도 등 토목 구조물은 철거 시 별도의 해체 감리 지정 의무 규정이 미비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치권과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토목 구조물 해체 시 구조 안전 전문가의 상주 감리를 의무화하는 법안 제·개정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위험 징후가 포착된 노후 구조물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 점검하는 구시대적 방식을 금지하고, 드론이나 3D 스캐너, 원격 센서를 활용한 '비대면 정밀 안전진단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의무 도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참사는 대한민국 건설 안전 시스템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었다. 위험을 바로잡고 안전을 진단하기 위해 투입된 현장소장, 감리단장, 구조기술사 등 최고의 베테랑 전문가들이 정작 자신들의 안전은 보장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안전진단 D등급을 받은 지 7년 동안 예산과 행정 절차를 이유로 철거를 미뤄오다, 막상 철거 단계에 이르러서는 후속 공사 일정과 짧은 작업 시간에 쫓겨 서둘렀던 조급증이 화를 키웠다.

 

도심 속 노후 구조물의 수명이 대거 도래하는 '노후 인프라 교체기'를 맞이한 지금, 철거 공사를 신축의 부속 공정으로 취급하는 낙후된 인식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제도적 공백을 메우는 법 개정과 함께, "위험 징후 시 현장 전면 통제"라는 기본 원칙이 타협 없이 지켜지는 구조적 안전망 재구성이 시급하다.

작성 2026.05.30 11:29 수정 2026.05.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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